동부건설 들어갔다가 식겁한 이유

안녕하세요? 제가 2019년에 마지막으로 쓴 글의 제목이 "장단기 금리 역전으로 커지는 R의 공포"네요. 아이러니하게도, 약 3년이 지난 이 시점에 딱 들어맞는 제목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2019년까지만 해도 침체의 공포를 느끼던 시장이, 2020년 전세계적인 팬데믹으로 각국이 어마어마한 현금을 살포하면서 2년 정도는 자산 시장에 대호황이 찾아왔고, 우리나라도 소위 "동학개미", "서학개미" 열풍이 불 정도로 주식과 부동산 시장이 호황이었죠.

 

하지만 그렇게 들떠 있던 시기가 채 1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불황의 공포에 떨고있는 현실이라니... 

 

서론이 길었네요. 오늘은 제가 올해 상반기에 동부건설에 들어갔다가 큰 고통을 감내하고 손절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주식투자를 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가치투자를 표방한 이후론 아마 최대 규모의 손실이 아닌가 싶어서 기록으로 남겨두려 합니다.

 

먼저, 제가 동부건설에 투자한 가장 큰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요약 가능합니다.

1. 신 정부의 적극적인 주택 건설 정책

2. 꾸준히 증가하는 동부건설의 실적과 수주잔고

3. 타 건설주 대비 높은 배당수익률

 

요즘같은 부동산 빙하기에 첫째 이유는 거의 의미가 없어져서 생략하고, 둘째 이유부터 살펴보죠.

 

아래는 네이버 금융에서 가져온 동부건설의 요약 재무제표 중 제가 관심있게 보는 항목 위주로 편집을 해봤습니다. 최근 5년간 매출액과 영업이익, 순이익 등이 꾸준히 증가하는 좋은 모습을 보였고, 배당도 최근 3년간 6~8%대로 아주 매력적이었죠.

 

다만, 매년 부채총계가 증가하고(특히 2021년말 기준 급증) 잉여현금흐름(FCF)이 계속 마이너스 상태인 점이 좀 걸리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초저금리 시기인데다 이렇게까지 급격하게 금리인상을 단행할 줄 아무도 예상을 못 했던 시기라 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2021년 사업보고서를 보면 수주잔고가 무려 7조원으로서, 시총 대비 어마어마한 물량을 확보한 덕에 앞으로도 승승장구 잘 나갈 것이라 생각하고 꽤 많은 비중을 실어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정말 일장춘몽이었던가요? 파월 연준의장이 촉발한 금리인상 여파로 부동산, 특히 주택 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으면서 건설주들도 힘을 못 쓰고 전부 하락하기 시작하였죠. 특히 우리나라는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 등 추가적인 악재가 터지면서 정말 추풍낙엽처럼 주가도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그 여파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ABCP, PF 등 생소한 용어들이 뉴스에 난무하면서 투심은 더더욱 얼어붙었던 시기였죠. 그래서 제가 지금껏 가볍게 생각했던 동부의 채무보증 등 앞으로 회사를 옥죄게 될 요소를 사업보고서에서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아래는 그 중 가장 큰 부분인데, 22년 9월 말 기준으로 채무보증 등의 잔액이 무려 2조 5천억 원이나 되더군요. 물론 신규 수주를 하고 사업에 착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하나, 문제는 갑자기 금리가 폭등한 상황에서 자금 시장에 심각한 돈맥경화까지 찾아왔다는 점입니다.

 

혹시나, 다른 건설업체들도 대부분 이런 상황일까 싶어서 제가 동부와 비슷하게 수주잔고도 많고 고배당을 주던 금호건설을 한번 살펴봤습니다. 그랬더니 아래처럼 지급보증과 PF 잔액이 대략 1조2천 억 미만으로 동부보다는 훨씬 적은 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시기에 이 정도 금액이 안전하다는 건 아니니 오해마시길...

 

아래는 동부건설의 주봉차트인데요. 제가 14000원대에 진입했지만 1년도 되지 않아서 주가가 반토막이 나버렸습니다. 정말 괴로워서 밤에 잠도 잘 안 오더군요. 그냥 이 시기만 지나가면 언젠가 다시 원금 회복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날아가버렸습니다. 그 만큼 건설 시장, 자금 시장이 돌아가는 상황이 안 좋았기때문이죠.

정말 만 원 정도만 와도 바로 팔아버려야지하고 속으로 생각하다가 드디어 그런 기회가 왔습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약속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동부의 수주잔고 8조원이라는 호재 기사가 뜨면서 갑자기 상한가로 마감하는 날이 왔습니다. 저는 손실율이 높아서 고민고민하다가 그 동안 잠못 이룬 시기를 생각해보니, 그냥 빨리 이 고통을 벗어나고 싶어서 과감하게 상한가에 전량 매도해버렸습니다.

 

지금은 그 가격에서 15% 정도 주가가 내려가긴했지만, 앞으로 더 떨어지더라도 다시 진입하기는 쉽지 않아보입니다. 저는 지금껏 해오던 대로 그냥 (수익이 적더라도) 돈 많은 기업에 맘 편히 투자하는 게 가장 좋아보이네요.

 

아무튼 이번 기회에 값진 경험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렵니다. 지금도 글을 쓰다보니 속이 너무 쓰리긴하네요.